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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로마시대나 중세 세익스피어의 시대에는 지금과 같은 미디어가 없었다. 그들의 오락은 무엇이고, 또 어떤 매개를 통해 삶의 희노애락을 해소하고 감정을 순화시키며 살았을까?
먼저 로마시대의 원형경기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벤허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차경주나 노예들간의 격투 그리고 전사와 야수들과의 피비린내 나는 혈투를 보면서 그들의 야성에 환호하고 탄식하며 일상을 즐겼다.
그리스 시대의 원형극장이나 중세 영국의 노천극장을 생각해 보자. 여러 극단에서 이 동네 저 마을을 순회하면서 연극을 공연했을 것이다. 당시 마이크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이니 원형극장은 육성도 멀리 전달될 수 있게 무대나 좌석이 설계되었다고 한다. 또한 배우들의 분장도 있었겠지만 가장 중요한 연극의 드라마적 구성이 탁월해야 했다. 해질 무렵 동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한 두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연극에 푹 빠지게 해야 하기 때문에 한편의 드라마로서 잘 갖춰져야 했으리라. 모든 게 배우의 몸짓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사로 드라마가 진행되야 하므로 각본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러한 드라마적 요소의 전형이 바로 비극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의 소포클레스에서 중세의 세익스피어에 이르가까지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전통을 이어 온 비극이란 장르는 이런 시대적 환경과 배경으로 탄생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란 저술이 온전한 텍스트로 남아 있지 않아 전체적으로 완벽한 이론을 확인할 수 없지만, 서양 문예 비평사에 이 만큼 지속적이고 큰 영향을 준 책은 없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詩學)에서 비극을 정의했다. 시학의 6장은 비극의 정수를 보여준다. 1~5장이 6장의 비극을 설명하기 위한 용어나 개념의 기초 작업이였다면 7장 이후는 6장의 핵심 내용을 부연 설명한 정도로 이해하면 족하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6장"은 인류 문예사의 시작이자 전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에 6장의 내용 전문을 옮겨본다.
육절운율에 의한 모방과 희극에 관해서는 뒤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먼저 비극에 관하여 이야기하기로 하자.
우선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으로부터 비극의 본질을 정의해 보자. 비극은 진지하고 일정한 크기를 가진 완결된 행동을 모방하며, 쾌적한 장식을 가진 언어를 사용하되 각종 장식은 작품의 상이한 제부분에 따로따로 삽입된다. 비극은 드라마적 형식을 취하고 서술적 형식을 취하지 않으며, 연민과 공포를 환기시키는 사건에 의하여 바로 이러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행한다. 쾌적한 장식을 가진 언어란 말은 율동과 화성을 가진 언어 또는 노래를 의미하고, '작품의 상이한 제부분에 따로따로 삽인된다'는 말은 어떤 부분은 운문에 의해서만 진행되고 어떤 부분은 노래에 의해서 진행됨을 의미한다.
배우가 스토리를 실연하기 때문에 첫째 장경(場景, 또는 배우의 분장)이 불가피하게 비극의 일부분이 될 것이고, 다음은 노래와 조사(措辭)다. 왜냐하면 이 양자는 모방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조사란 다름 아니라 운문의 작성을 의미하며, 노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비극은 행동의 모방이고 행동은 행동자에 의하여 행해지는 바 행동자는 필연적으로 성격과 사상에 있어 일정한 성질을 가지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이 양자에 의하여 우리느 그들의 행동을 일정한 성질의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행동의 원인은 자연히 두 가지인데 사상과 성격이 그것이며 그들의 생활에 있어서의 모든 성공과 실패도 이 두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행동의 모방은 플롯이다.
나는 플롯이란 말을 이러한 의미로 사용하기 때문에 플롯은 스토리 내에서 행해진 것, 즉 사건의 결합을 의미한다. 한편 성격은 행동자를 일정한 성질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바를 의미하며, 사상은 행동자들이 무엇을 증명하거나 또는 보편적인 진리를 말할 때 그들의 언사에 나타나는 바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모든 비극은 여섯 가지 구성 요소를 가지지 않으면 안되며, 이 여섯 가지 요소에 의하여 비극의 일반적인 성질도 결정되는데, 플롯과 성격과 조사와 사상과 장경과 노래가 곧 그것이다. 이 가운데 두 가지는 모방의 수단에 속하고, 한 가지는 모방의 양식에 속하고, 세 가지는 모방의 대상에 속한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사실상 모든 시인들이 이러한 요소들을 사용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드라마는 장경, 성격, 플롯, 조사, 노래,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여섯 가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의 결합, 즉 플롯이다. 비극은 인간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과 생활과 행복과 불행을 모방한다. 그리고 행복과 불행은 행동 가운데 있으며 비극의 목적도 일종의 행동이지 성질은 아니다. 인간의 성질은 성격에 의해서 결정되지만 행, 불행은 행동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므로 드라마에 있어서의 행동은 성격을 묘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격이 행동을 위하여 드라마에 포함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건의 결합, 즉 플롯이 비극의 목적이며 목적은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또 행동 없는 비극은 불가능하겠지만 성격 없는 비극은 가능할 것이다.
대부분의 현대 작가들의 비극에는 성격이 없다. 그리고 이것은 많은 시인들에게 공통된 결함이다. 그것은 화가들 중에서 제욱시스를 풀뤼그노토스와 비교할 때 볼 수 있는 바와 같다. 왜냐하면 폴뤼그노토스는 우수한 성격 화가인데 비해 제욱시스의 그림에는 아무런 성격이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시인이 성격을 잘 나타내주는, 그리고 조사와 사상에 있어서 훌륭하게 손질된 일련의 대사를 차례 차례 내놓는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아직 비극의 진정한 효과를 산출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점에서는 다소 미비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플롯, 즉 사건의 결합을 구비한 비극이 훨씬 더 훌륭한 효과를 산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비극에서 우리를 가장 매혹하는 것은 급전(急轉)과 발견인데 이것들은 플롯에 속하는 부분이다. 또 한가지 증거로 작시의 초심자들이 사건이 결합보다 조사와 성격 묘사에서 성공을 거둔다는 사실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초기 시인들 거의 전부에게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비극의 제1원리, 또는 비극의 생명과 영혼은 플롯이고 성격은 제2위인 것이다(이와 유사한 예는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색채라도 아루렇게나 칠한 것은 흑백의 초상화만큼도 쾌감을 주지 못할 것이다).
비극은 행동의 모방이며 비극이 행동자를 모방하는 것도 주로 행동을 모방하기 위해서이다. 제3은 사상이다. 사상이란 상황에 따라 해야 할 말과 적당한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대사에 관한 한 이 능력은 정치학과 수사학의 연구 분야에 속한다. 왜냐하면 엣날 시인들은 등장 인물들로 하여금 정치가와 같이 말하게 했고, 오늘날의 시인들은 수사학자와 같이 말하게 하기 때문이다. 사상을 성격과 혼돈해서는 안된다.
성격은 행동자가 무엇을 의도하고 무엇을 기피하는지가 분명치 않을 때 그의 의도를 분명하게 해준다. 따라서 말하는 사람이 무엇을 의도하고 무엇을 기피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말은 성격을 나타내지 못한다. 그런데 사상은 무엇을 증명 또는 논박하거나 보편적인 명제를 말할 때 그 언사 속에 나타난다. 여러 가지 언어적 요소 가운데 제4의 것은 조사다. 조사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언어로 사상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역할은 운문에 있어서나 산문에 있어서나 동일하다. 나머지 두 개 가운데 노래는 비극의 쾌감을 산출하는 양념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장경은 우리를 매혹하기는 하나 예술성이 가장 적으며 작시술과는 가장 인연이 먼 것이다. 또 장경의 준비에 관한 한 의상계의 기술이 시인의 기술보다 유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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