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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음택지 명당"
"남연군 묘"


남연군 묘는 풍수지리에서 답사 1순위로 꼽히는 음택지이다. 풍수를 동양 전통사상이나 문화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알고 보면 매우 정교한 지리학이 아닐 수 없다.

명당이라면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는 자연의 힘이 있고, 처음 방문한 공간이라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요소를 고루 갖춘 곳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살면서 자연의 형상과 영향을 온전히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당연히 자연 친화적 환경을 찾게 된다. 이것이 명당이다.  


남연군 묘는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이구의 묘로 1846년에 조성되었다. 당시 유명한 풍수가 정만인이 2대에 걸쳐 천자(王)이 난다는 터로 대원군이 경기 연천에서 이장해서 조성했다. 풍수 영향인지 고종과 순종이 대원군 후손에서 났으니 틀린 진단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장된 묘는 독일 상인 오페르트에게 도굴되는 수모를 겪었고 이 사건으로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천주교 탄압으로 이어졌으니 한편으로는 죽어서도 기구한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묘 앞 석등(長明燈)이 있고 그 원통을 통해 전경을 들여다봐야 명당임을 알수 있다.

지난 가을 예산 근처를 지나게 되어 호기심에 답사를 가봤다. 풍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높지 않는 산과 아기자기한 들녘의 길을 돌고 돌아 도착해서 보니 한눈에 명당이다. 본래 있던 가야사는 공원처럼 조성되었고, 남연군 묘 주변은 문화재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옆에는 남은들 상여각이 세워져 있었다.

남은들 상여각...우리는 메타버스가 아니라 상여버스를 타야한다.

일단 남연군 묘는 뒷 배경 주산은 옥양봉(621m), 좌측(백호)에는 서원산473m), 우측(청룡)에는 석문봉(656m), 우측 앞쪽으로는 가야산(678m), 원효봉(604m)이 병풍처럼 둘러쌓여 있었고, 전방을 내려다 보이는 방향은 약간 동남향이었다. 울창한 산과 봉우리로 안아주는 느낌으로 산이 위압감을 줄 만큼 높거나 험한 정도가 아니라 묘를 보호하는 암탉의 가슴 털처럼 아늑해 보였다. 전방으로 펼쳐지는 너른 들녘과 옥계저수지 그리고 저 멀리 원경에는 예당저수지 봉수산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직선거리로 충남도청이 보이는데 이 또한 우연은 아니리라 생각했다.

마침 봉우리를 감싸는 운해가 아는함을 더해준다.


나는 풍수가 후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후손들이나 후대에 그 뜻을 헤아리고 해석하는 문화적 정신적 측면은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가족이나 나를 위한 음택지는 관심이 없지만 행여 전원주택이나 노후에 도시를 벗어난다면 이런 지세를 찾아야 겠다는 마음은 들었다.

죽은 자를 위한 명당은 음택지라 하고, 산 자를 위한 명당은 양택지라 한다. 우리는 음택지가 아닌 양택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실제 자동차로 다니면서 많은 집들을 보면 잘못된 방향과 지세가 많다. 다시말해 우리나라는 한반도 지형상 남서향이 적합한데도 북향이나 북서향이 의외로 많다. 심지어는 햇볕도 잘 들지 않는 북향에다 전면에 높은 산을 바라보는 건축물을 흔히 볼 수 있다. 왜 이런 곳에 집을 지었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든다. 뒤로는 북쪽 산이나 봉우리가 있고, 앞으로는 남(동, 서)향으로 넓은 들녘이 있고, 조그마한 개천이나 물이 흐르는 지역을 골라야 한다.

이것이 남연군 묘를 보고 느낀 실사구시적 양택지 풍수 해석이다.

전체를 보듯 산으로 둘러쌓인 아늑한 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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